[Interview] Family Lifestyle in Berlin

 

우연한 기회에 지인들과 방문하게 된 마리아나(Mariana)의 집은 들어서는 순간 끌리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화려하기보다는, 깊이감 있는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고, 금새 편안한 기분이 들었으며, 곳곳에 수 많은 스토리가 있는 듯 했다. 때마침, 삶 속에 녹아 있는 문화적인 요소들, 예를 들자면 그림, 책, 음악 같은 것들에 지속적인 관심이 있던 차라 모든 요소가 녹아 있는 그녀의 공간에 관한 호기심은 결국 그녀를 인터뷰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녀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먼저, 개인적으로 이렇게 멋진 공간에 살고 있어서 부럽다. 천정이 높고, 창이 크며, 마루가 깔려있고, 아름다운 테라코타 장식이 있는 이러한 베를린 특유의 주거공간을 “Alt Bau(알트바우)라고 하지 않나? 어떻게 이 공간을 찾게 되었나?

우리 가족은 홍콩에서 23년을 살았다. 하지만 서서히 유럽에 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남편 안드레아스(Andreas)가 독일인이기에 자연스럽게 독일. 그중 우리는 시티라이프를 사랑하기에 베를린으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집을 찾기 위해 신문도 찾아보고, 부동산도 찾아다니며 몇 군데 집을 방문해서 살펴 보았지만, 레이아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형적인 베를린 주거의 레이아웃은 긴 복도가 문제였다. 그러던 중, 굉장히 운이 좋게도 남편의 회사동료가 전직 변호사 부동산 중개인을 소개시켜 주었고, 그 사람이 이 집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이곳 Charlottenburg (샬로텐부르크- 베를린의 서쪽지역)에서 원하는 집을 찾기는 힘들텐데…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한 군데 보여줄 곳이 있다.”며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 나는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아, 첫눈에 반했었나?

그렇다. 처음 발길을 들였을 때 반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 하지만, 제일 중요했던 점은 빛이 매우 잘 들었다는 것이다. 집의 양방향의 창문으로 빛이 잘 들어와서 공간이 매우 밝았다. 아침에는 거실 쪽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고, 오후에는 주방쪽으로 빛이 충만하게 들어온다. 우리는 정말 행운이었다. 실제로 이런 공간을 찾기가 매우 힘든것을 알고있다. 베를린의 집 구조는 정말 이상한게 많은 것 같다. 가끔 어떤집은 침실로 가기 위해 주방을 거쳐가야 하기도 하니 … 하지만 이곳도 처음부터 이런 구조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어떤 구조였고, 어떻게 구조를 바꾸었나?

자, 직접 설명을 해주겠다. (그녀는 나를 입구로 데려가서 차근차근 하나씩 설명을 해 주었다.) 지금 우리는 복층 공간을 모두 사용하는데, 본래 이 집은 하나의 입구로 들어와서 또 다시 다른 공간들로 분리되어 있었다. 우리는 분리된 공간을 허물고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거실로 사용하는 이 공간은 중앙에 막힌 벽이 있었는데 이것을 허물어 하나의 큰 공간으로 만들었다. 처음에 이 부분에서 건축가와 의견이 상충되었는데, 결국엔 그도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 외에 효율적인 레이아웃과 동선을 위해 문의 위치를 조금씩 바꾸었고, 의미 없이 길었던 손님용 화장실을 반으로 나누어 컴팩트하게 만든 후, 나머지 반은 주방에서 입구를 내어 식료품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기존에 있던 공간의 디테일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마루나 문, 창문, 천정장식 같은 것들 말이다. 주방은 원래 패턴이 굉장히 아름다운 타일로 되어 있었고, 오래된 클래식한 오븐이 있는 욕심 나는 공간이었지만, 아쉽게도 상태가 좋지 않아 새롭게 바꾸었다. 그리고 지금 거실로 사용하는 공간과 TV가 놓인 공간의 바닥재를 바꾸었다. 두 공간 사이엔 문이 있어 지금은 연결된 공간으로 사용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 문을 항상 닫아두고 양쪽에서 각자의 공간으로 사용하였기에 바닥재도 달랐다. 건축가는 처음에 그 상태 그대로 바닥재를 사용하자고 했으나, 물론 오래된 바닥재가 멋스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연결된 공간에 각기 다른 바닥재가 있는 것 보단, 하나로 연결된 느낌을 가지고 싶었기에 최대한 기존에 깔려있던 헤링본 패턴의 컬러가 비슷한 자재로 마무리를 하였다. 윗층 같은 경우는 주방을 없애고 그 자리에 욕실을 만들고, 계단 윗부분에 있던 욕실을 없애서 오픈 된 느낌의 계단실을 만들었다.

 
 

홍콩에서 살던 집은 어땟나?

쇼파, 팬던트 조명, 옷장(붙박이장이었다.), 아이들 방의 몇 가지 가구를 제외하고는 지금 있는 모든 것들이 대부분 홍콩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자라기 때문에 침대를 바꾸어 주어야만 했다. 홍콩 집 또한 복층구조였고, 지금보다 약간 작았지만 역시 좋은 크기였다. 하지만 그 곳 역시 오래된 빌딩이었고, 높은 천정고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창문 같은경우, 더 모던한 타입이었다. 그리고 위치는 숲이랑 가까웠기에, 창문 밖으로 숲이 펼쳐져 있었다. 녹색의 우거짐, 언덕 그리고 바다가 보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밖으로 건물이 보인다. 문제는 반대쪽 건물이 외벽 페인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겨울이 되니 나뭇가지가 앙상해져서 더욱 도드라져 보여 어떨때는 바깥을 내다보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다행히도 지붕색이 멋져서 정말 다행이다. 대부분의 것들이 홍콩에서부터 가져왔기 때문에 친숙하기는 하지만, 홍콩과 이곳은 정말 다르다. 왜나면 그때 우리는 언덕 위에 살았기 때문에 도심에서 조금 분리된 위치에 있었고, 지금처럼 밖에만 나가면 어디에도 갈 수 있는 상황과는 조금 달랐다. 그리고, 그곳은 대중교통이 그리 좋지도 않았다. 버스를 타려면 한참을 나가서 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든지 모험을 할 수 있다. 밖에만 나가면 뭐든지 다 있다. 홍콩에서의 삶은 자연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자연과 가까운 홍콩이라니… 꽤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한번 홍콩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나에게 홍콩은 매우 복잡하고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도시의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우 행운이었다. 홍콩에 가봤으니 그 곳의 지리를 알겠지만, 우리는 파이낸셜 아일랜드(홍콩섬)의 언덕위에 집이 있었다. 홍콩은 매우 복잡하지만, 운전해서 10분 거리에 있던 우리집은 주변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5개의 빌딩이 모여있었고, 7층밖에 되지 않았다. 홍콩에서는 흔하지 않은 저층 건물이었다. 그때는 정말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오히려 베를린보다도 조용했다. 복잡하고 오염도 심한 그곳에서 우리는 정말 행운이었다. 하지만, 나는 홍콩에서의 삶이 그립지는 않다. 우리는 좀 더 도시와의 연결이 필요했다. 언제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또는 걸어서 쉽게 도심에서의 삶을 즐기고 싶었다. 홍콩은 걷기에 좋은 도시는 아니다. 하이킹은 나쁘지 않다. 정상에 올라가면 멋진 공원이 있고, 정말 멋진 전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도심은 시끄럽고, 덥고, 길은 좁고 사람이 많아 계속해서 부딪히게 된다.

 
 

가구들이나 소품들이 느낌이 굉장히 독특한데, 주로 어디서 구입을 했나?

처음으로 이케아가 아닌 곳에서 구입했던 좋은 가구는 지금 TV아래에 놓인 중국식 서랍장이다. 쇼파와 아이들 방의 가구등 몇 가지는 베를린에서 구입했지만, 대부분은 홍콩에서 구입했다. 조명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다시 구입을 했는데, 그 이유는 홍콩에서 가져온 조명은 모두 팬이 달려 있는데, 팬이 돌 때 그 힘으로 천정의 스타코 장식들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 책장과 커피테이블은 우리가 직접 제작을 하였다. 그리고 여행을 가서 구입한 것들도 꽤 많다. 여기 이 바구니는 마카오에서 가져온 것이다. 테이블은  홍콩에서 구입한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이다. 하하. 이전에 우리는 더 진하고 묵직한 테이블이 있었는데 이건 좀 더 릴랙스한 기분이 들어서 좋다. 많은 것들이 인도네시아, 태국제품들인 것 같고, 대부분 홍콩에 있을 때 구입을 한 것들이다. 그리고 거실에 있는 나무의자 두개는 길을 가다 우연히 발견한 버려지기 직전의 것으로 상태가 너무 좋아 작은 테이블 두개와 함께 집으로 가져오게 된 것이다. 그들이 차를 불러 다 가져가도 좋다고 했으나(어마어마한 가구가 버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글쎄 그렇게 까지 할 여력이 되진 않는 상황이었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이 집에 잘 어우러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항상 벽에 무언가를 걸었다. 왜냐하면, 공간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어주기 때문이다. 아, 예전에 누군가는 벽에 스티커 붙이는 것을 보긴 했다. 아이들 방에는 괜찮겠지만… 물론 어떻게 연출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

 

한국에서도 그 방식을 많이 사용했었다. 왜냐하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흥미로웠던 것은 남미에 있는 우리 이모댁은 TV가 놓인방의 벽을 블루 페인트로 칠했는데, 다크블루가 아닌 진짜 블루, 정말로 멋졌다. 그리고, 거실은 옐로우였다. 어떻게 이런색을 선택할 용기가 있었는지… 나는 절대로 그러한 원색을 선택하지 못 할 것 같다.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지만, 어떻게 원색으로 멋지게 공간을 연출하는지 모르겠다. 또 다른 나의 중국계 미국인 친구는 항상 이사할 때마다 거실의 한 벽면, 오직 한벽만 택해서 벽돌색으로 칠하는데, 정말로 멋진 기분이 들게 한다. 나도 이렇게 컬러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는데, 정말로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조금 두렵다. 그렇다. 흰벽이 항상 안전하다!

 
 

그림을 거는 특별한 방식 같은게 있나?

물론 방식이 있긴하지만, 때론 괜찮고 때론 실패할 때도 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올 때는 도면을 받아 어디에 어떤 작품을 배치할 지 미리 생각을 했다. 지금 쇼파뒤에 걸린 이 큰 작품은 사진인데, 항상 책장과 함께 놓으려고 한다. 이 작품을 보면 화려한 느낌에 뭔가 기분이 업 된다. 아리헨티나 아티스트의 작품인데 그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열기가 넘치는 아르헨티나 축구장에서 경기가 끝난 후 콘페티(축제때에 뿌리는 색종이 조각)을 투명한 판에 붙여 투영시켜 사진을 찍은 작품이다. 이작품은 홍콩에서 마운팅 작업을 했는데, 슬프게도 각도에 따라  약간의 기포가 생긴 것을 볼 수 있으나 홍콩의 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작품에 대해 그리고  이 작품이 왜 여기 걸리게 되었는지 그에 대한 얽혀 있는 많은 스토리를을 하나씩 집안을 돌며  설명을 해 주었다.) 또다른 이 작품은 중국 아티스트의 작품인데, 전통적인 오리가미의 방식으로 표현되었지만, 굉장히 모던한 느낌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고 개인적으로 불교의 철학을 떠올리곤 한다. 죽음이나 삶을 대하는 불교의 철학이 좋다. 다이닝테이블 뒤에 있는 이 작품은 아버지의 와이프로부터의 선물이다. 그녀가 페인팅스쿨에 다녔을 때, 하루는 음악을 들려주며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라고 했고 이게 그 결과물이다. 얼마 전 아버지와 그녀가 우리집을 방문했는데, 이 그림이 걸려 있는걸 보고 굉장히 기뻐했다. 보통 작품을 롤로 받아 마운팅을 하는데 그때 신중하게 전문가와 상의를 한다. 아! 이 작품은 뉴욕에서 활동중인 한국 작가의 연작 작품인데, 뉴욕에서 잃어버린 자아와 다시 발견한 자아를 표현한 흥미로운 작품이고, 홍콩 마르코 호텔에서 열린 아트페어에서 구입했다.

 

호텔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라니, 재미있다.

매년 특정기간 동안 홍콩 마르코 폴로 호텔은 투숙객을 받지 않고 두세층의 호텔룸을 갤러리로 사용한다. 일반호텔 객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 작품이 전시되고 작가들이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정말 뛰어난 한국작가들을 많이 만났다. 정말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을 보면 아래에 넘버가 적혀 있는 리소그라프 작품인데 보통 페인팅은 금액이 부담 되기 때문에 우리도 많은 사진, 파스텔화, 리소그라프 작품들을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 그림을 모으기 시작했나?

현관 입구에 있는 “Newyork Taxi”가 1992년에 처음 돈을 주고 구입한 그림이다. 그 전에는 친구들 또는 가족들에게 선물을 받은 것들이다. 그림을 구입하기 시작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구입을 하게 되었다. 어렸을때부터 아버지는 항상 예술분야에 관여해 계셨고, 자연스럽게 많은 갤러리와 뮤지엄을 다니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트가 일상이 되었던 것 같다. 거실에 있는 책장을 보면 대부분 예술에 관련된 책들이다. 어렸을 때 나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 어릴적 생일 또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발레책은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전공했던 예술사에 관련된 책들이다. 그밖에 그림 작품집, 영화관련 책들, 음악관련 책등이 있다. 이 책장은 예술관련 컬렉션이라고 보면 된다. 그밖에 다른 책들, 역사책, 소설, 남편의 책들, 아이들 책은 침실이나 남편의 서재등에 흩어져 있다. 그리고 거실 테이블에는 사진이나 이미지 위주의 커피테이블용 책이 놓여있다. 더 이상 읽지 않는 책들은 기증을 하기도 하였으나, 내가 청소년 시기에 보던 오래된 발레 잡지는 나의 보물과도 같기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책장의 아랫쪽 부분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림을 선택할 때 기준이 있나?

물론이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작품을 봤을 때 작품이 대한 감이 좋고, 그 작품이 말을 걸어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다. 만약 우연히 작가와 만나 많은 대화를 하다보면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더 잘 알게 되고 스토리를 사랑하게 되며 더욱 관심이 가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기회를 갖는 것은 쉽지가 않다. 작품에 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작가를 만나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그리고 로컬 커뮤니티 안의 아티스트나 영아티스트를 서포트 하는 것도 좋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품은 활기가 있고 멋있기도 하며 금액도 저렴하다.

 

만약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보게 되면, 얼마동안 생각 후 구입을 하나? 아니면 바로 구입을 하나?

남편과 내가 둘다 동의를 하면 바로 구입을 한다. 생각하지 않고 구입한다. 하하. 왜냐하면 우리가 고민하는 사이에 작품이 팔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쨌든 이건 특별한 교감이기 때문에 작품이 말을 걸어올 때 우리는 바로 응답을 해야만 한다. 한가지 예외의 경우는 자선단체의 그림인데, 이 경우는 그림이 처음부터 말을 걸어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자선단체의 그림일 경우 좋은 일도 할 수 있고 저렴하게 그림도 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집에서 음악을 즐겨 듣는가? 주로 어떤 종류의 음악을 듣는가?

아이들이 있기 전에는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음악은 나의 삶이었다. 지금도 음악을 즐겨 듣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가족들이 말을 시작하면 너무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하. 하지만, 집에 혼자 있는 기회가 있을 땐 물론 음악과 함께 한다. 클래식 음악을 제일 좋아하고 다음으로 재즈를 즐겨 듣는다. 물론 팝이나 살사 같은 라틴음악도 때론 듣는다. 어쨌든 결국 기분에 따라 골라 듣는 것 같다.

 

여행을 가서 그곳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것이나, 추후에 여행을 기억하게 해 줄 만한 물건들을 구입하는 편인가?

그렇다. 발리에서 산 조각품, 태국에 구입한 파티션(현관입구에 벽에 기대어 두고 옷을 거는 행거로 사용하고 있다), 페루의 레타블(Retablo), 마카오에서 구입한 바구니 등등. 많은 물건들이 여행을 하면서 우리에게 찾아온 것 들이다. 대부분 크라프트맨쉽이 느껴지는 물건들에 매력을 느끼고 가져오게 되는 것 같다. 보통 맘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면 나는 걱정을 하는 편인데, 남편이 물건을 포장해서 수트케이스에 넣어 가져오는 실력이 정말 대단하다. 정말 놀랍다. 장거리 여행의 경우, 수하물이 50kg 정도로 넉넉한 편이라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집에 있는 모든 물건에 스토리가 있는 것 같다. 그 어느것도 그냥 있게 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이 집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것 물건 3가지를 고른다면? 

물론 가족이 최고지만, 가족은 여기서 제외한다면… 나의 책들, 발레컬렉션 이것들을 잃게 되면 난 정말 너무 슬플 것 같다. 그리고 몇 가지 그림들. 아. 이거 너무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그리고 몇몇 내가 좋아하는 티벳의 가구들… 어쨌든, 나의 책들이 나에겐 제일 소중한 것 같다.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짧게 요약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것이다. 기분이 안 좋은 가족이 있다면 함께 서포트 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들 말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함께 시간을 보낸다.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함께 공유한다. 나도 그렇게 자랐고, 우리 남편도 그렇게 자랐다. 그래서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Sharing 이 우리에겐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우리 자녀들이 문제가 있다면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의논한다. 또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함께 나누며 우리 자녀들이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 자녀들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바쁘고, 공부도 해야하고, 시험도 봐야하고, 그들만의 자유도 추구하기 때문에 때때로 어렵기도 하다. 작은 아이는 아직 11살이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지만, 큰 아이는 이제 곧 대학을 준비해야 하기에 많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지속적으로 끊임 없이 교류하고 항상 서로에게 오픈을 한다. 자녀들에게 조언을 할 때는 항상 조심을 하는데, 균형을 잡기위해 노력한다. 예전에 홍콩에 있을 때는 남편이 늦게까지 일을 해야할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항상 저녁식사를 함께 하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집에서 해야할 일을 더 하곤 했었다. 식사를 할때는 식사를 함께, 티비를 볼때는 티비를 함께… 이게 우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이다.